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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역사상 해당 월에 있었던 중요한 인물들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콘텐츠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9월의 인물

9월의 인물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2020년 9월 18일 미국 대법관으로 여성과 소수자 인권의 옹호자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33년 미국 뉴욕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코넬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1956년에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하버드 로스쿨 학생 552명 중 여학생은 9명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남편의 일 때문에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겨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계에다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63년에는 럿거스대 로스쿨 교수로 취임했습니다. 1972년 컬럼비아 로스쿨의 교수가 되었는데 이는 여성으로는 최초였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자유연합의 고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300여 건의 성차별 사건의 소송을 주도했습니다. 스티븐 와이젠펠드는 아내를 잃고 갓난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보육수당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긴즈버그는 이 사건을 맡아 변호를 했고, 남자도 보육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후 그는 미 연방 항소법원의 판사로 13년 동안 일을 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1993년 연방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평등과 소수자를 위한 판결을 이끌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여성 입학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판결 등이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보수적인 판결을 내릴 때는 소수의견을
낭독하며 의회의 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기 래퍼 ‘노터리어스 B.I.G’에 빗대어 노터리어스 RGB로 불릴 정도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암으로 투병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법원에서 일하며 미국 사회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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