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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역사상 해당 월에 있었던 중요한 인물들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콘텐츠입니다.

부춘화

이달의 인물

이달의 인물 - 부춘화

1995년 2월 24일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한 부춘화 열사가 사망했습니다.
부춘화 열사는 1908년 제주도 구좌에서 태어났습니다. 15살부터 물질을 배워 해녀로 일하는 중에도 밤에는 사립 보통학교 야간학부에서 공부했습니다.
1928년에는 해녀조합의 구좌면 해녀 대표가 되었습니다. 당시 해녀들은 채취한 해산물을 일본인 주재원이 일괄 수납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춘화 열사는 이런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해녀(잠녀) 항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해녀 1500여 명과 함께 일본 검속 경관대를 습격하고 관청에 일본인의 침탈을 중단해달라는 요구를 계속했습니다. 해녀들의 항일투쟁은 1931년 5월부터 1932년 1월까지 230회, 1만 7000명이 참여했습니다. 해녀들의 투쟁은 해녀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었고, 식민지 수탈정책에 저항한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1932년 1월 7일 제주 도사가 구좌면을 순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춘화 열사는 해녀 1000여 명과 함께 도사의 행차를 막고 해녀의 권익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해녀조합이 일제에 의해 휘둘려 일본인 상인에게 특혜를 주려 하자 부춘화 열사를 포함해 해녀 5인이 대표해서 제주 도사를 만나 해녀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해녀들을 검거했습니다.
부춘화, 김옥련, 부덕랑 열사들이 경찰에 자수해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부춘화 열사는 풀려난 후에도 일제의 감시가 계속되어 오사카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그는 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인회장을 하며 해녀 권익을 위해 계속 일했습니다.
1995년 부춘화 열사 사망 후 2003년 8월 15일 정부는 건국훈장 포장을 수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