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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사건

역사상 해당 월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콘텐츠입니다.
역사적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도록 해요.

신탁통치 오보 사건

12월의 사건

12월의 사건 - 신탁통치 오보 사건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과에 대해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잘못된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38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했고, 38선 이남은 미국군이 주둔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그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개국 외상이 모여 한반도의 신탁통치 등에 대한 협의를 했습니다. 이 협의에서 ‘첫째, 한국에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해 민주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둘째,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소련군 공동으로 위원회를 설립한다, 셋째, 공동위원회는 한국의 독립 달성을 위해 협력, 원조(신탁통치)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넷째, 2주일 내에 미국과 소련의 사령부 간 긴급회담을 개최한다.’입니다.
미국은 얄타회담 때부터 한국의 신탁통치를 4~50년간을 주장했고, 소련은 5년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는 5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공식 회의 결과가 나오기 전 12월 27일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반대했다는 오보를 냈고, 이 기사를 다른 신문도 받아쓰게 됩니다. 독립 이후 다시 신탁통치라는 사실에 여론은 들끓게 됩니다. 신탁통치는 또 다른 식민지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 극우와 극좌, 신탁통치 이후 통일정부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좌익의 주장이 충돌하면서 한국은 극심한 갈등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